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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 글

작은 어머니를 닮은 여자 C

로마 숙소에서 만난 C의 첫 인상은 굉장히 선명했다. 목소리도 선명했고, 생김새도 그러했다. 먼저 한 방을 같이 쓰고있던 A와 그녀의 말이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와 가르치는 직업군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잠시 했다. 그녀는 나의 작은 어머니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늘상 신나보이고 화통하신 작은 어머니를 작게 줄여놓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볼 수록 그녀는 첫 인상과 달리 매우 지쳐있는 어른이었다. 선명했던 목소리와 인상은 그녀 스스로 엄청난 힘을 쏟아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몇 년간 석사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선 얼마전까지 통역일을 하다가 건강이 안좋아져 수술을 하고 잠시 여행을 왔다고 했다. 작은 혹을 떼어 내는 일이었다지만 작고 가늘어진 자신의 몸을 스스로도 불쌍해 하는 것을 보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나보다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옷을 매우 잘 입는 사람이었다. 

선명했던 첫인상은 깔끔한 그녀의 옷차림 때문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적절히 밝고 적절히 선명한 적절한 분위기의 옷을 작은 캐리어에서 척척 꺼내다 입었다. 또 그녀는 안경테에 관심이 있는 편인 내가 보아도 밋밋하지도, 너무 튀지도 않는 적당한 자신의 색을 가진 멋진 안경을 쓰고있었다. 옷을 잘 입는 편이 아닌 내가 당신의 옷차림에 칭찬을 하며, 동경의 눈으로 보자 그녀는 나의 옷차림에도 몇가지 팁을 주었다.

어느 날 아침엔 숙소 주인으로 부터 커피 맛이 좋은 집을 추천 받았는데, '카페 마끼아또'를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했더니 아주 조그만 illiy플라스틱 잔에 커피가 나와 C와 나는 귀엽다며, 맛이 좋다며 소리소리를 질렀다. (이탈리아에서 마시는 카페 마끼아또는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조금 넣어주는 커피를 말한다) 그리고는 콜로세움을 보러 이동하던 길에 작은 소품가게 쇼윈도에 진열된 두가지 색의 노끈으로 엮은 유리잔 커버가 맘에 들어 사진을 찍었는데 그녀가 자신과 취향이 맞는다며 즐거워했다. 또, 그녀는 제법 큰 주방용품점에 들러서 모카포트며, 접시며, 컵이며 자신의 취향을 내비쳤다. 그렇게 하루 종일을 웃으며 보낸 그녀는 첫인상 처럼 선명한 어른은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며 그녀는 외로운 어른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나와 비슷한 어른이었다. 하지만 또 너무 다른 생각을 갖고 사는...

C는
34살이라는 나이에 치였고,
결혼 얘기를 하지 않는 바람기 있는 애인에게 치였고,
타지에서 공부하고, 일하느라 망가져버린 건강에 치였다. 

그녀가 지긋한 그곳으로 부터 단 며칠이라도 이곳 로마로 도망치고 싶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함께 여행을 하는 스치는 인연들에게 오히려 더 쉽게 속내를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피렌체에서 만났던 X가 유독이 그런 여행자였고, C는 함께한 시간이 조금 지나자 속에 썩어가고 있는 것들을 슬쩍 꺼내어 보여줬다 다시 감추었다. 그녀의 속에 든 것들을 보고나서 나는 C가 작은 어머니를 더이상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첫날과는 다른 인상이었고, 더 지쳐보였고, 조금더 작고 야휘어 보였다. 

C를 처음 본 날에도 전당포에 들랄거리는 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싶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의 고민을 하며 전당포 앞을 서성이는 나같은 사람과는 다른 단단한 인생계획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을 때 입안에서 텁텁한 단내가 나는 상태처럼 보였다. 커피맛을 이야기 하고, 좋아하는 컵을 이야기하고, 짠내가 진동했던 엔쵸비 피자를 먹으며서 힘껏 웃어재낄수 있는 소통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멀리 로마로 도망을 왔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맘을 몰라주는 애인으로 부터, 결혼을 하고싶어 안달이 난 자신으로 부터, 결혼 할 나이가 지났다는 세상의 강박으로 부터. 취향이 잘 맞는다는 나와 함께 했던 며칠이 C에게 아주 작은 즐거움이 되었길 바라본다. 

'황사가 가라 앉으면 얼굴 한번 봐요' 라고 그녀는 문자를 남겼다.

얼마뒤 그녀를 볼 수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그녀가 그녀의 사람과 소통을 통해 입안에 단내를 없앴기를 바라본다.





이러나 저러나 전당포 갈 필요가 없다는 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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